소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과정은 나에게나 가족에게 힘겨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어학연수 와중이었다. 필리핀 라샬 대학교의 교정은 어느 곳보다 밝았다. 공원처럼 필리핀 사람들은 앉아서 대화를 노트북을 들고 이야기도 나눴다. 대한민국에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선교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에선 어느 캠퍼스는 활동을 통해 다양하게 종교 체험을 할 수 있다. 나도 그 체험에 곧 들 예정이었다. 작은 인연이 모여 나는 할머니를 잊으며 지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나에게도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 남자친구는 나에게 ‘힘내‘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는 곧장 키스를 나눴다. 그 뿐이었지만 나는 즐거움의 연장이라고 봤다. 필리핀 어학연수 생활은 2번이나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베트남의 어느 소도시에서 먹은 첫 번째 쌀국수는 내가 한국인이 더 이상 아니라 서양의 어느 호텔 주인으로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부자만 되어갔다. 쌓아 놓은 재산은 점점 쉬운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할머니는 이런 나를 못마땅해 하셨다. 마땅해 하셨다. 둘 다로 나를 키우시며 할머니가 되어가셨다. 대한민국에서 ’돌아가셨다‘는 정황은 법교육을 일으킨다. 고맙게도 한국의 교육은 교양인과 더불어 경찰준수 인지를 준다. 나는 어렸을 떄부터 인지 쪽이 아팠지만, 뽀뽀뽀로 이겨내기도 했다. TV를 켜며 나보다 좋은, 훌륭한, 멋진 외모와 자랑할 만한 사람들의 모든 것들을 보며 자랐다. 필리핀에 갈 때는 더 많은 것들을 담고 갔다. 어쩌면 필연으로 여자에 대한 존경과 책에 대한 훌륭함을 여기서 전달할지도 모른다.
1:1 교육방식으로 진행된 수업은 나에게 지나치지 않은 정서를 주기 벅찼다. 날씨와 온도가 언제나 뜨겁고 사랑이 넘쳤다. 질문들은 어떻게도 적절한지!
다짐
“바콜로드라는 나라는 유명해지지도 유명하지 아주, 이런 도시지.”
“저도 그래요 아저씨 제! 제가 태어난 곳도 그런 곳이에요. 동네지만 도시예요!”
그렇지만 쌓을 수 있는 깨끗한 먼지가 드러나는 빌딩뿐 만이 아니란다, 책이야.
책과 그리고 편지란다. 편지도 늘 잊지 마렴.“
나는 어리지 않은 다짐을 했다. 나는 모든 아저씨를 볼 때마다 아빠와 동일시 했다.
‘아빠는 여기에 필리핀에 어디든 나를 지켜주며 한국에 엄마랑 재밌도록 놀고 있으면 좋겠다. 그럴 때 나는 할머니를 더 생각하며 영어를 더 생각하며 둘 다를 극복한다. 그것이 이번 내가 성숙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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